현재 위치
  1. 게시판
  2. 활동공유

활동공유

커뮤니티알의 활동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게시판 상세
[프로젝트 알림] 어떤 농담
커뮤니티알 평점 0점   작성일 2021-04-16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18



어떤 농담



작성: 포니



새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네가 게이일지라도 아무 상관없다는 회사에서 게이로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던 내게는 동갑의, 그 역시 게이인 직장 동료가 있었다. 나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입사한 그는 말과 행동이 조금 과장스럽고, 끼가 다분하며, 여기저기 말을 잘 붙일 줄 알고, 심지어 얼굴도 잘 생긴 친구였다. 당시 회사에 그 친구와 나이가 같은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동갑을 빌미 삼아 내게 한없는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를 보고, 나의 관리자는 우리가 서로 친해지면 그와 나 모두 회사에 잘 적응하리라 생각했는지, 나는 그와 함께 점심을 먹는 경우가 잦았다. 마음에 점을 찍는 숭고한 직장인의 일과. 그 시작에는 반드시 담배를 태워야 했다. 중요한 제식은 으레 향을 태우며 시작하지 않던가. 다행히도 그와 나는 둘 다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이었다.


건물 지하주차장 한편의 작은 흡연실에서, 그날 역시도 우린 함께 점심 제식 전 담배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한 치 오차 없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빨리 캡슐을 터트리고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깊이 빨았다. 그 사이 그는 아주 행복한 미소로 코트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초코에몽이었다.그는 우아하게 빨대를 뽑아 꽂고는 한 모금 쭉 빨아 삼키고 평소보다 한 톤 높여 말했다.


"으음~~ 달아”


그리고 아주아주 친절하고 예쁜 미소로, 나에게 소리쳤다.


“너도 한입 해! 나 에이즈 없어!”


아.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알약을 천 개쯤 먹었음에도 예기치 못하게 들려오는 ‘그 단어’는 나를 한껏 얼어붙게 만들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담배를 한껏 입에 담은 지금, 충분히 생각해내야 한다. 다행히도 나에겐 풍부한 혈중 니코틴이 있었다. 생각을 해. 폐가 두 개인 것은 담배연기를 오래 머금기에 좋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3가지.


1. 감염인 인권 파이터가 되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2.“난 있는데” 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3.“넌 왠지 에이즈 있을 것 같아"라고 농을 걸친다.


1번. 안 된다. 그와 나는 친하지 않다. 그는 지금 기분이 좋다. 나는 분명 좋은 톤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매우 진지한 인간이라 생각할 것이다. 어휴 무슨 애가 농담도 못하니? 그래. 그냥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뭐. 세상엔 그런 농담이 많다. 그리고 우린 모두 농담을 한다. 이미 사라진 농담이다. 나만 들은 것이니 나만 잊으면 된다. 나는 마음이 넓다..


2번. 그 역시 농담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뱉을 자신은 없다. 알약을 천 개쯤 더 먹으면 좀 뻔뻔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3번. 좋다. 이 교묘한 농담은 칭찬을 담을 수 있다.‘넌 남자 많이 만나고 다닐 것 같아’라는 의미. 게이들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네가 잘생겼다는 뜻이니까. 못생긴 게 어떻게 에이즈에 걸릴 수가 있겠어? 문란한 것도 능력이야. 질투를 담으면 훨씬 그럴듯할 거야. ‘너 미모 좋잖아’를 덧붙이도록 하자. 


"넌 왠지 에이즈 있을 것 같아. 너 미모 좋잖아.”


역시, 효과는 좋았다. 


“야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난 콘돔 꼭 껴~ 날 뭘로 보구?흐흐흫”


콧소리를 한껏 담아 그가 말했다.


재수 없어 정말. 콘돔까지 잘 낀다니. 잘났다. 너 아주 잘났다. 그래 나는 못나서 안 싸했다. 무식해서.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그래. 나는 눈을 보면 거절을 못 해. 마음이 약해서. 좋은 사람이라서. 그 사람도 좋아 보였어. 두 팔로 나를 꽉 안아주고 나를 구석구석 핥아준 사람이라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 같진 않았어. 몸에 이상도 없었고. 나한테 입 맞추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 기분이 좋아 보였어. 표정에서 떨림에서 신음에서. 그래서 남기고 싶었어. 확인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예뻐해!라는 걸.그건 내 보답이기도 했어. 안에 싸도 돼요. 허락해 준 거야. 그래…. 내가 허락해 준 거야.


라고 속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야, 뭐 먹지 우리?”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그가 물었다.


“매운 거. 칼칼하고, 뜨거운 거. 갑자기 그런 게 당기네."


내가 말했다. 


나는 담배를 서둘러 껐다. 그 역시 내 사인에 맞추어 담배를 끄고 마시던 초코에몽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직 많이 남아있었는지 묵직한 소리가 났다. 좀 매운 걸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많이 매우면 금방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오늘의 농담도.











우리의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알림.
알림은 HIV/AIDS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와, HIV감염인의 존재, 인권 그리고 삶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편견을 바로잡고 낙인에 맞서는 이야기 말하기 사업입니다. HIV감염인 당사자와 지지자, HIV/AIDS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참여문의
인스타그램 @communityr_official

이메일 r.ypcok@gmail.com
전화 010.2164.1201
————————————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0 / 200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