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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알림] 생각보다 가까운 의료차별
커뮤니티알 평점 0점   작성일 2021-04-13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38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 생각보다 가까운 의료차별

 


작성: 상훈(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운영지기,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상임활동가, HIV와 함께 산지 만 10년 된 30대 HIV감염인이자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

 


한동안 섹스를 할 때는 탑만 했다. 내가 탑을 할 때는 콘돔 주도권이라든가 탑의 권력이라든가 자의를 좀 더 실천 할 수 있는 자유도라든가 그런 게 좀 더 있어서 콘돔은 꼭 사용해왔다. 얼마 전에 남자를 만났는데 취한 상태에서 섹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고민만 하다가 콘돔 없이 삽입을 당한 적이 있었고 내가 당시에 섹스에 크게 감흥이 없다는 것을 안건지 상대가 중간에 관계를 멈춘 적이 있었다. 평소에 성매개감염병에 대해 조금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예방 없는 삽입은 너무 오랜만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에 샤워를 하기 전 항문 안쪽 손가락을 넣어 요리조리 만져보았다. 시간이 지나 뭔가가 만져지기 시작했고 경과를 두고 지켜보니 조금 더 커지기에 항문 콘딜로마 감염이 의심되어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항문콘딜로마로 병원에 방문하면 제거수술 전에 100% HIV검사가 들어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HIV감염인의 항문 콘딜로마는 큰 위기이다. 첫 번째로 항문 콘딜로마라고 하면 게이라는 것이 너무 쉽게 밝혀지고, 두 번째로 HIV감염인의 콘딜로마 제거수술 역시 수술이기 때문에 의료차별이나 거부를 너무나 쉽게 당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싸더라도 가다실부터 쳐 맞을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혹시 콘딜로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빈약한 희망을 크게 부풀려 검사를 받아볼 각오를 했다. 그리고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항문 콘딜로마’를 검색을 하니 별의 별 정보가 다 나온다. 콘딜로마는 바이러스 질환이라 물리적 제거보다도 중요한 것은 면역력을 높여야한다는 한방병원. 내 면역수치는 현재 1200대라 웬만한 HIV비감염인보다 면역수치가 높은 편인데 발병했다. 항문 외 콘딜로마를 제거한다는 비뇨기과. 난 항문 안쪽이라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필요 없는 정보들을 추리다보면 세상에는 참 나와 먼 세상의 이야기로 가득한 것 같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수년 전에 항문을 전문으로 본다는 송○병원은 HIV감염인의 의료거부를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고민만 하다가 가지 않았고 종각쪽에 있는 항문 전문 개인병원을 예약했다.

 

병원에 들어서니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한다. 치질이나 탈장관련 문진을 지나 가려움이나 변 상태를 체크하는 항목이 나왔는데 어디에도 체크 할 수 없었다. “후장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뭔가 만져졌어요.”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럽고 대충 가려운적이 있었다고 체크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하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전문의들은 손가락만 넣어 봐도 게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던데’, ‘게이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그런 비슷한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진료실로 들어가란다. 

 

‘에라 모르겠다’

나에게 선택지는 없다. 게이가 아니고서야 남성의 항문에 콘딜로마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고 의사가 나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고 ‘어? 게이네? 더러운 게이새끼’라고 생각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 HIV감염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상황을 마주해도 나를 받아 줄 병원도 많이 없기에 어떤 수치스러움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HIV감염인이라고 수술을 거부한다 한들 거부하는 사람에게 수술을 강제로 맡길 수도 없다. HIV감염인인 남성 동성애자의 항문콘딜로마는 어쩌면 HIV를 밝히고도 온전히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검증된 병원을 찾는 긴 여정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료실 입장.

 

“어떤 것 때문에 왔어요?”

“항문 안쪽에 뭐가 있는 것 같아서요”

“당뇨나 고혈압 있어요?”

“고혈압 있어요”

“병원다녀요?”

“네(주기적으로 가요)”
“고혈압 관련해서 무슨 약 먹어요?”

“몰라요 무슨 약인지는... 심장 관련 약을 먹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 약만 먹어요?”

 

‘혈관질환 관련해서 약을 하나 더 먹는데 뭘 먹더라...’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의사가 다시 물어본다.

 

“하루에 약을 몇 개 먹어요? 하루에 입에 들어가는 알약 총 개수를 이야기해주세요”

(‘아 콜레스테롤 약도 먹는구나, 근데 HIV치료제를 이야기 해야 하나?’)

“콜레스테롤 약 먹어요”
“그렇게 두 개?”

(‘HIV치료제는... 넘어가도 되겠지..?’) “네”

 

진료베드에 하의를 무릎까지 내리고 웅크리고 옆으로 누우란다. 자세를 취하니 의사가 손가락에 젤을 듬뿍 묻혀 항문에 넣는다. 다른 땐 이게 좋은데 너무 불쾌했다. 이리저리 만지더니 “깨끗한데요?” 란다. ‘아니야 거기가 아니라고 잘 좀 해봐’라고 생각하며 자세한 위치를 알려주니 몇 번 만지고 내시경을 넣었다. 콘딜로마라며 “항문섹스 했어요?” 묻는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네”라고 대답했다. 치핵 쪽에 있어서 치질 수술이랑 비슷할 거고 콘딜로마로 보이는 애들은 다 제거할 것이다 이야기 한다. 질문 있냐고 묻는다. 아는 정보가 없는데 뭘 더 묻기도 애매하다. 없다고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카운터에서 수술날짜를 예약했다.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해야 한단다. 콘딜로마 수술을 할 때 하는 혈액검사에는 대부분 HIV검사가 포함돼있는걸 알고 있기에 조금 단념했다. 혈액검사로 알게 되는 질환이나 검사 목적에 대한 고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일단 소변검체를 제출하고 체혈실에 갔다. 피를 뽑고 병원을 나섰다.

 

이틀이 지나 오늘(2021년 3월 31일)이 됐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 중에 사무실에 거의 다 와서 전화가 와서 받았다. 혈액검사에 대한 결과를 알려주기 위한 전화였다.

“병원이에요. HIV간이검사에서 HIV양성이 나왔어요. 알고 계셨어요?”

“네”

“보건소에 등록도 되신 거죠?”

“네”

“그럼 저희 보건소에 보고 안 해도 되는 거죠?”

“네”

“네 알겠습니다”

 

운전 중이기도 하고 묻는 거에 대답하는 것도 바빠 뭘 물어보지도 못했다. 내가 제일 처음 콘딜로마 커밍아웃을 한 포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에서 HIV양성 나왔다고 연락 왔는데 이 통화 이후에 아무 말도 없다. 이거 수술 약속은 잡아놨는데 수술은 진행되는 걸까?”

“취소되지 않았을까? 다시 확인 해봐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겠지?”

 

업무를 보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수술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했다.

 

“저 오늘 아침에 통화 했었는데요. 저 수술은 진행이 되는 건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상훈입니다”

“아, 수술은 원래대로 진행이 되고요 HIV양성이라 추가금액 5만원 더 내시면 돼요”

“5만원을 더 내요? 왜요?”

“사용하시는 식기나 수술포, 수술복이나 환자복 그런 것들을 다 폐기해야 해서요 그래서 5만원이 추가결제가 돼요”

“뭘 폐기한다고요?”

“수술할 때 쓰는 수술포나 환자복 그런 것들 이용하시고 나면 폐기해요”

“왜요?”

“환자복을 원래 재사용을 하는데 HIV라서 폐기해요”

“그 병원은 감염병 관리규칙 준수 안하면서 수술하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다 지키면서 수술하죠”

“근데 왜 폐기를 해요?”

“빨래를 같이 돌리면 HIV가 다른 환자복이랑 섞이기도 하고...”

“HIV가 일상생활로 전염 안 되는 건 알고 계신 거죠?”

“네 알죠”

“근데 폐기한다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이건 명백한 차별이고요. 오늘 이 내용과 관련해서 인권위에 진정 넣겠습니다. 그렇게 알고계시고요. 수술일정은 취소해주세요”

 

전화를 끊었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진정서를 작성했다. 내 정보를 기입하고 진정 대상을 해당 병원정보로 기입하고 진정 사례를 작성했다. 증거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일단 기입된 내용으로라도 뭔가 수사가 진행되겠지 싶었다. 진정사례를 적으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HIV감염사실을 알고도 수술을 해준다는 사실에 감동을 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 의료인이 HIV예방을 사용물품 전량폐기로 할 수 있을까?’

‘내가 쓴 물품을 다 폐기한다고? 지금 나한테 더럽다고 하는 건가? 난 더러운 인간인가?’

‘아니 어쩌면 인간취급도 안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난 HIV감염인일뿐 더러운 사람은 아니야’

‘원래 한국의 HIV인식은 처참하다. 제대로 인식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의료인이라고 비의료인과 인식이 더 낫지 않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의료 차별, 더 심하게는 의료 거부를 당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으니까 괜찮다. 다음을 바라보자’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았다. 현실은 상상한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현재에 도출되는 다음은 내 선택이 아닌 불가피하게 따라야하는 다음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콘딜로마를 옮은 상황도 짜증나고, 가다실을 비싸게 공급하는 회사도 짜증나고, 보험도 안 해주는 정부도 짜증나고, 의료차별을 하는 병원도 짜증나고, HIV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세상도 짜증나고, 10년 정도 HIV활동을 해왔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무기력해졌다.

 

‘이 지랄을 또 해야겠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약간의 미동을 주기위한 활동을, 나를 받아줄 병원을 찾는 것을, 성매개 감염병은 다시 날 괴롭힐 수도 있고 난 다시 병원을 찾아보겠지.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또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겠지? 단념과 스스로의 위로를 반복적으로 해나가며,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사회를 살아가며 난 다시 답답해 할 거고 그럼에도 조금씩 긍정적인 면모를 바라보며 기운을 내겠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거쳐 가며, 진정서를 적으며, 5만원이라는 돈을 추가 지불해서 내가 나에 대한 차별을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너무나도 화가 났다. 어떤 차별은 당하고 보상금이라도 받을 텐데 나는 왜 돈을 내가며 차별을 받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생각과 그럼에도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적절히 융화해 나가면서 진정서 작성을 마쳤다.

 

제출한 진정서가 나비효과가 되어 세상을 흔들지, 아니면 미미하게나마 병원을 변화시킬지, 아니면 정말 큰 변화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의 크기가 어떠하든 적어도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성소수자로서 수치스럽지 않게 병원을 이용 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HIV감염인이 의료차별이나 거부를 걱정하지 않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오기는 올까? 온다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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